지난 사흘간 무수한 '처음'을 겪어보았다. 유족이라는 호칭으로 불려본 것도 처음, 시체(비록 내 외조부이나)를 두 눈으로 보고 만져본 것도 처음, 우리 가족의 경조사에 나 때문에 찾아온 손님을 맞이한 것도 처음, 뜻밖의 위로와 격려에 알쏭달쏭한 감상에 빠져버린 것도 처음, 외삼촌과 막내이모의 눈물을 본 것도 처음... 모두가 처음 투성이었다.
남들은 이런 나를 두고 발인일부터 당장 아무일 없었다는 듯 트위터며 블로그며 할 여력이 있느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이 세상 수 많은 사람들이 모두가 한가지 방식으로만 삶을 살아가지 않듯이 나 또한 나만의 방식으로 그리고 내가 지닌 가장 빛나는 재능으로 할아버지와의 이야기를 정리하려고 한다. 이 글을 본 또 다른 이들이 할아버지를 추모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믿고싶다. 다만, 이런 내 모습에 할아버지께서 서운하다 하시거든 그저 한번 더 죄송할 뿐이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중환자는 아니었지만 집 밖으로 멀리 나서지 못한지가 어느새 5년 째. 그리고 완전히 몸져 누우신지가 두달째라 가족들은 이미 어느정도 마음 정리를 한 상태였다. 비록 병원에 들어가셨단 전화 이후로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너무나 빨리 들려온 비보에 꽤 당황하기는 하였지만, 그 마저도 결국... 이라는 마음을 먹게 하고 말았다. 남들처럼'나도 데려가시라거나 우린 못산다'는 등의 통탄어린 오열 한 번 없었던 아주 평온하고도 그래서 더 슬펐던 지난 사흘이었다.
나는 장례식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마치 실연이라도 당한 여자처럼 굵은 눈물방울을 송이송이 흘렸다. 그러다가 주변 사람이 오해할까 싶어 애써 그걸 삼키고 또 잠시 후에는 더 굵은 눈물을 뽑아내길 반복했다. 혼자서 온갖 회상과 신파에 젖어 2시간을 달려왔더니 오히려 장례식장에 들어서는 섧은 마음조차 사라져버린 착각이 들었다. 아마 많은 친척들이 함께한 자리라 자연스레 그리 됐으리라 믿는다. 또 엄마를 지켜줘야 한다는 의지도 한 몫 했을테고...
어렴풋하게 기억이 나는 시절부터 세어보니 할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도 20년에 이르렀다.(그리고 한 동네에서 지척을 두고 왕래한 기간은 그 중 절반에 이른다.) 친손녀도 더군다나 첫 손주도 아니었지만 이만하면 그들에 비해서도 아쉬움 없는 꽤 각별한 사이였다고 믿는다. 그렇게 기억을 더듬어보니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쓴 글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것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천만 다행이고 덜 죄송스럽고 그래서 한번 더 서글퍼졌다. (해당 게시물: 바로가기)
입관식과 발인때 외엔 식구들도 별다르게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찾아온 손님들이 안도하고 조금은 아이러니해 할 만큼 씩씩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호상 아닌 호상, 아직은 부족하고 어린 나는 이정도로 밖에 표현을 못하겠다.
할아버지의 영정을 볼 때마다 바닥에서 솟아오른 못에 두 다리가 고정된 양 굳어버린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소리내어 말을 건네다가는 내가 무너질 것 같아 마음으로만 자꾸 말을 걸었다. "동생이 보름전에 입대했어요. 그것만 아니었음 오랜만에 뵈러 달려왔을텐데. 할아버지 지켜주실꺼죠? 휴가나오면 꼭 뵈러가자고 할께요.", "할아버지를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저를 알고 애정해주시는 많은 분들이 인사를 전해주셨어요. 그러니까 꼭 천국가셔야 해요.", "할머니 생신 때, 조만간 또 올께요. 라고 말하고 그 조만간이 오늘이라 너무 죄송해요. 뵈러갈때 더 많은 얘기 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그냥 다 죄송해요."
할아버지가 머물게 되실 벽제 하늘문 추모공원은 배우 이광기씨의 아들 석규군을 비롯해, 안재환 그리고 그분의 모친, 영화사 아침의 정승혜 대표 등 유명인들이 많이 모셔져있는 화려하지만 은근히 아늑하고 호젓한 공간이었다. 나는 이 부분도 제법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빠른 시일내에 멋진 남자친구를 만나 손을 꼭 잡고 그 안타까운 분들의 넋까지 위로하는 마음을 담아 찾아뵈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 두손으로 할아버지를 만졌고, 아쉬움은 있지만 결코 적지 않은 눈물을 흘렸고, 저녁때는 닷새 전까지도 할아버지가 누워계시던 빈 방에 덩그라니 앉아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사실 난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두달 전부터는 혀가 굳어와 음식을 씹으실 수 없기에 지병인 당뇨가 악화됨을 알면서도 기력을 내고자 어쩔수 없이 드셨던 베지밀.. 그리고 케익 상자들, 그 외에 아직 치우지 못한 할아버지의 물건들이 넓지 않은 집 안에서 내 시선을 붙잡았다.
많은 사람들은 가족과 지인들의 죽음을 겪으며 인생따위 정말 허망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바쁜 일정을 쪼개 움직이게 하고, 그들에게 잠시나마 뜨거운 반성과 눈물을 안겨주고, 오랜만에 먼 친척들과 지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안부를 주고받고 마음을 나누게 하기에 나는 그것이 결코 허망할 수 없다고 여긴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집으로 찾아뵌 엄마가 "아버지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지?"하는 물음에 분명하게 "응, 그럼"이라고 대답하셨던 할아버지. 하지만 많은 친척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 '복 많은 양반' 이셨기에 장례기간 우리 층에서 가장 많은 화환과 손님을 받고 떠나실 수 있었으니 분명 평온하고 행복하시리라 믿는다. 또 가족들이 모두 동의하듯 '염라대왕 앞에서도 호통 칠 어르신' 이기에 더더욱 안심이 되고 말이다.
이제 오랜 지병으로 무거웠던 육신 벗고 자유로운 곳에 가셨으니, 어린시절 내가 기억하는 그 꼬장꼬장하던 모습 그대로 우리를 지켜봐주셨으면 한다. 이따금 우리가 너무 잘 못 살아간다 싶음 꿈으로 찾아와 혼도 내주셨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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