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니 가오리 (江國香織) / 소설가
1964년 3월 21일생 / 일본
요시모토바나나, 야마다에이미와 더불어 일본 3대 여류작가 中 한 사람
그녀의 소설은 한창 공부에 파고들어야 했던 고3시절 왠지 모르게, 일탈을 꿈꾸며 다른곳에 한눈 팔고 싶던 순간에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사실 작가보다는, 유명한 작품에 주로 책 선택을 의존하는 타입이기에 연애소설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읽어봤다고 하는 <냉정과 열정사이>를 친구의 추천으로 집어들게 되었다.
<냉정과 열정사이>는 츠지 히토나리(Blu)의 남자주인공인 쥰세이 당사자의 관점과 에쿠니 가오리(Rosso)의 여자주인공인 아오이 당사자의 관점을 각각 남녀 작가가 같은 시간을 두고 서로 다른 남녀 연인의 관점에서 한편의 연애소설을 읊어주듯 진행되는 이야기 이다. 당시 나는 이소라씨가 진행하시는 음악도시 특히 그 중에서 미나작가님이 직접 쓰시고, 성시경씨와 이소라씨가 각기 남녀의 관점으로 한가지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남자 그여자>에 심취해 있었기에, 유독 이 책이 더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처음에는 왠지 모르게 츠지 히토나리(Blu)의 책이 더 끌려서 먼저 집어들었음에도 두 권을 다 읽고 난 후에 나는 이미 에쿠니 가오리, 그 섬세한 문체에 녹녹히 빠져들어 헤어날 수 없는 팬이 되어버렸다. 이미 헤어져버린 연인이 오랜 시간 후에 추억의 장소에서 함께하자고 약속했던 기억을 더듬어 다시 그곳에서 재회하게 된다는 다소 식상한 스토리의 이야기임에도, 너무도 섬세한 그리고 전혀 꾸미지 않기에 더욱 아름다운 그녀의 문체에 흠뻑 심취했던 것 같다.
두번째로 그녀와 만날 수 있었던 책은 당시 그녀의 신간으로 출판 된 <도쿄타워>. 사실 그 전부터 읽고 싶었음에도 대학 새내기가 되어 친구들과 어울리고 다른 유흥거리에 흠뻑빠져있던 터라, 매번 서점에서 마주쳐도 ‘아, 이 책....’ 하고는 지나치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제법 친해졌던 과 언니도 에쿠니 가오리의 열혈 팬임을 알게되었고, 이미 소장한지 오래라는 말에 냉큼 빌려서 밤을 새워 보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도쿄타워 역시 전형적인 그녀의 문체가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제 갓 20살이 된 청년과 엄연한 가정이 있는 마흔살 한 중년 여성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은, 같은 제목인 릴리 프랭키의 책 도쿄타워(부제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라는 책과 비교할 때 불륜이라는 소재를 다룸으로써 훨씬 퇴폐적이고 자극적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하지만, 나는 이미 에쿠니 가오리의 열정적인 팬이 되어버린 터라 늘 사회적인 악재로 생각했던 불륜 마저도 다소 완곡하게 볼 수 있게 된 관점의 전환이었다.
일본에서는 이미 그녀의 책들 중 영화화 된 작품이 냉정과 열정사이를 포함하여 여러편이다. 그 중 내가 가장 처음으로 접한 것이 <도쿄타워>였다. 이것만 보아도 에쿠니 가오리 라는 작가가 일본 내에서 얼마나 영향력이 있고 인정받는 사람인지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그녀의 팬은 원작을 사랑한다면 영화화 된 작품들을 보지 말라고 매섭게 충고했지만, 나에게 있어서 영화 도쿄타워는 뒤늦은 나이에 느낀 애틋한 사랑과 현실의 가치 속에서 번뇌하는 가녀리고 외로운 여주인공을 눈과 귀로 느낄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냉정과 열정사이는 아직 영화로 보지 못했다. 영화에서는 남주인공이 멋지다고 한다.) 특히나 일본 배우들에게 한참 관심이 생기면서 마츠모토준이라는 배우에게 애정을 쏟을 때였고, 그가 소설 속 또 다른 이야기의 남자주인공인 코지의 역할을 맡은 것도 영화에 대한 애착을 한층 높였다.
세번째로 만난 그녀의 작품 <반짝반짝 빛나는>. 사실 이 때만 해도 고작 2권의 책으로 이미 그녀에게 헤어날 수 없게 빠져버린 터였지만 이 작품만큼은 쉽사이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개인적으로 가장 거북하게 느끼는 소재인 동성코드가 담겨져 있으며 호모 남편과, 알콜 중독의 아내, 그리고 그 남편의 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일상의 작은 헤프닝들을 다룬 이야기이다. 지극히 암울하고도 절망적일 것 같은 이들의 이야기를 이번 책에서도 언제나처럼 그녀 특유의 서정적이고 청아한 문체로 풀어내어, 이 책 또한 나에게 있어서는 소중한 기억이며 사회적 편견을 다소 해소시켜 주는데 기여했다.
이번 책까지 읽은 후에 느낀 것이, 언제나 그녀의 책에서는 인생에서 고독감을 최고조로 느끼는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이 표면화되어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로 주도하기 보다는 각자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해소 방법과 삶의 요령을 터득해서 자칫 심오하게 추락해 버릴 수 있는 이들을 삶의 밝은 곳으로 인도해 주는 방향을 인도해 준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내 마음을 잡아 흔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웨하스 의자>는, 그야말로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일본에서 유학중인 이모의 초대로, 홀로 난생 처음 해외 여행을 떠나게 된 아침, 티켓팅을 포함한 아무런 경험이 없는 나로써는 얼마나 시간이 지체될 지 몰라 이륙시간보다 2시간이나 일찍 공항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쉽게 수속이 마쳐져 남는 시간을 즐길겸, 여행시 필요한 멘트들을 담은 일본어회화책을 구매하러 들렀던 공항 내 서점에서 원 목표였던 회화서적은 제쳐두고 구매하게 된 책이다.
덕분에 그녀의 나라에서 여행을 하는 내내 교통편을 기다리는 시간, 그리고 하루 여행을 마친 후 그날의 소감을 글로써 마무리 지은 후, 남는 시간에 여독을 해소하며 한껏 빠져들었었다. 내가 책에 너무 빠져든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학교 공부에 숨돌릴 틈 조차 없던 이모도 한번 보시겠다며 다음번 귀국때 돌려주겠다고 책을 빌려가셨었다. 의자임에도 결코 앉을 수 없는 웨하스 의자. 이 책 또한 불륜이 남녀 주인공의 현실을 제약하는 소재이긴 하지만, 끝 마무리에 가서는 결코 그러한 사회적인 제한 조차 두 사람을 가로막을 수는 없는 원초적인 운명론적 사랑으로 이야기가 매듭짓는다.
어느 사회에서나 악의 축으로써 손가락질 받아 마땅한 이야기들을 언제나 왠지 모르게 순수함마저 묻어나는 이야기를 유도하는것, 그것이야말로 그녀의 반짝반짝 빛나는 능력인듯 싶다.
이 책이 가장 최근에 읽은 그녀의 작품이다.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는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시절 소녀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유명한 영화 <러브액츄얼리> 처럼 각각의 인물들이 가깝고도 먼 관계의 주변 사람들인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고 있어, 처음에 아무 생각 없이 읽다보면 후반부로 갈 수록 다시 앞장을 체크하게 되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이 책 또한 각자 사생활과 여러가지 비밀들을 안고 있는 여린 소녀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독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고독에서 헤어나 다시 밞음을 향해 나아가는 방법은 각기 어떤식으로 표현 될 수 있는지를 여러 구도에서 가르쳐 주는 책이다.
그녀의 가장 최신작 <홀리가든>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서점에서 발견하는 순간 고민의 여지 없이 구매했고 첫장을 펴지 못한 지금 이순간 가장 가슴이 뛰게 만드는 책이다. 지금 복학 준비를 위해 여러 읽을 책들과 지인의 권유로 접한 자료들이 산더미같이 쌓여있어서, 당분간 그녀와의 만남을 뒤로 미루었다. 하지만 아무런 이야기에 대한 설명이나 예고 없이도 언제나 빙긋 웃는 미소로써 기대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있어서 나에게 그녀의 작품이 지닌 가치다.
나는 그녀의 책을 읽으면서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만났던 박완서님의 <그여자네 집>을 떠올린다. 박완서님의 작품은, 그여자네 집과 몇년 전에 출간 된 장편 소설 <그남자네 집>. 이 두권밖에 만나보지 못했다. 두 작가의 공통점은 전혀 꾸밈이 없어도 감히 그 끝을 올려다 볼 수 없는 매력과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문체, 이야기의 전반적인 진행이 너무나 서정적이고 청아해서 우연히 착한 나무꾼이 꽃사슴의 도움으로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던광경을 만났던 그 순간의 황홀함을 느낄 수 있는, 그래서 사랑하는 작가이고, 작품들이다. 1월이 가기 전에 나는 <홀리가든>을 읽고 다시금 그 황홀경에 빠져 들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 기대감만으로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만큼의 충분한 설레임을 느끼고 있다.
(해당 포스팅은 네이버 블로그에 지난 2008년 1월 11일에 게재했던 내용을 일부 편집한 것임을 밝힙니다.)
(본문에 삽입된 책 표지의 파일은 국내 온라인 서점 사이트 리브로(www.libro.co.kr)에서, 영화 <도쿄타워>의 이미지 스틸컷은 네이트 영화(movie.nate.com)의 영화정보DB에서 발췌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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