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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에 위치한 이효석 문학촌에서 물레방앗간과 메밀꽃밭의 풍경을 맘껏 누리고 난 뒤
선생님께서 나고 자라신 생가 복원터로 향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쉬운 마음을 간신히 접고 뒤로 돌아섰는데 눈 앞에 고풍스런 기와지붕이 나타났다.

아마도 인근에 즐비한 메밀음식 전문 식당 중 하나인듯 했는데,
담 안쪽으로 여러 나무와 넝쿨들이 자라고, 한옥의 정취와 조화를 이루는게 참 멋스러웠다.




돌아나오는 길에서 참 요상스런 식물을 하나 발견했다.

꽃은 보통 크기보다 좀 작은 도라지꽃같이 생겼는데, 그 잎사귀는 콩 혹은 깻잎같고
간간히 찾아볼 수 있는 열매는 방울토마토같이 생긴...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녀석...

동행인과 나는 “혹시 말로만듣던 그 개량품종 작물(뿌리는 도라지 가지엔 토마토)??”
“오오 설득력있다!! 그런데 이런 시골 한적한 막길가에?! 비닐하우스 안도 아니고?!” 하며 덤앤더머짓을 했다.

끝내 이녀석의 미스테리는 풀지 못했다.
디씨 갤이나 지식인들께 여쭤볼 겸, 다른 부분들도 사진을 찍어올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생가 복원터로 가기 위해 다시 물레방앗간 앞 공터로 모였다.
우리 그룹원 중 메밀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그 안쪽까지 걸음을 옮긴 다른 그룹을 따라 간 분들을 기다리느라..

마른 풀줄기로 엮어 만든 물레방앗간의 울타리 아래 정승 하나가 이렇게 애처로이 누워있는걸 발견했다.
정승을 이렇게 홀대하면 마을에 재앙이... 이런 멘트를 흘리며 할머니같은 소리도 하고,
참 별일이 재밌고 별일이 다 색다른 하루였던 것 같다. 아마도 아름다운 풍경에 절로 마음이 들뜬 덕분이겠지..




앞뜰에 있는 나무의자(비가와서 앉을 수가 없었다. 밟고 올라서 먼 곳까지 사진을 찍는 용도로 활용)위에
새로이 뜰에 심으려고 가져다 놓은 꽃 모종이 보여 한 번 찍었다.

이제 곧 자기자리를 잡고 새로운 방문객들을 향해 예쁜 미소를 보여주겠지~ 하는 마음과 함께.




이제 본격적으로 이효석 선생님의 생가를 향해 나아가는 길
길가에 자리한 초가집들 모양새가 늘 알고있던 그것과는 다르게 참 독특하고 운치있었다.

다소 이국적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더 전통적이기도 한 느낌이었다.





생가를 바로 앞에 두고 지나는 길가에는
호박넝쿨이 낭창낭창하게 휘감겨 숲 속 궁전으로 가는 느낌이 펼쳐졌다.

언젠가 1박2일에서 이런 풍경을 본 기억도 났다.
그리고 그곳에 탐스럽게 매달린 호박들은 정말 특이했다.(!!)

마음같아선 살짝 따서 뱃속에 숨기고 싶었...(응?)
사진 속에 담긴 호박 말고도 참 특이하고 거대한 녀석들이 많았는데
이때부터 비가 마구 쏟아지기 시작해 카메라를 지키기 위해 촬영은 접었다.





근대문학의 또 다른 보배가 세상을 향해 빛을 보게 된 바로 그 집.
이효석 선생님의 생가는 그 당시의 모습을 최대한 간직한 그대로 복원되어 있었다.

실제로 아궁이 밑에는 생가를 관리하는 할아버지께서 불을 지피고 계셨고,
그것을 위한 땔깜들이 뒷문에 저렇게 소담히 쌓여있었다.

후두둑 떨어진 가랑비 치고는 꽤 많은 부분을 젖어버린 내 모습을 보고
인자하게 웃으며 “여 와~ 와서 불좀 쬐”라고도 말씀해 주셨지만,
왠지 부끄럽고 멋적어서, “아니예요, 감사합니다^^” 하고 말았다.

사실은 불 쬐는 것 보다, 고구마가 구워먹고 싶었다..(응?)





마당 뒷켠에는 어린시절 할머니댁에서 보았던 아기자기한 장독대와
그 어린시절에도 볼 수 없었던 아주 시골틱한 뒷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가나다라도 모르던 어린시절
우리 할머니댁에서도 가마솥에 밥을 지어 먹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도 화장실은 보통의 흙벽돌로 지은 공중화장실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어릴때는 그것도 참 무서워서 혼자 못가고 징징거리곤 했는데,
저런 화장실이라면 이부자리에 대형사고를 치는 일이 있어도
절대 밤에 못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설사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동행인을 살짝 찍었다. 얼굴 찍으면 카메라 뺏을 것 같아서...


아까 물레방앗간 앞에서 진지하게 설명을 듣고 계시던 우리차량 스텝님들. 이번엔 잠시 주의가 흐트러지셨다.


위의 호박넝쿨이 탐스럽게 달려있던 바로 그 길가가 저렇게 생가 정문 앞에 자리하고 있다.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문학관과는 다르게
이효석 선생님께서 실제로 태어나신 바로 그 방과 자리는 아니었지만,

우리 국민들에게는 별과도 같은 아름다운 작품을 선사해주신
그분을 떠올리며 뭉클해지는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다시 왔던 만큼 이상의 길을 걸어서
이제는 선생님의 작품과 여러 전시물들을 접할 수 있는 문학 기념관으로 이동했다.

언덕 초입에 자리하고 있던 큰 정문 기둥이
저렇게 선생님의 책을 모형화 한 구조를 취하고 있었는데, 정말 독특하고 멋스러웠다.




정문의 지붕 안쪽에는
저렇게 원고지 속에 쓰여진 모양으로 선생님의 작품을 새겨놓아서

아 이것이 정말 문학기념관이구나.. 싶은 탄식이 절로 나왔다.
세삼한 것 하나하나까지 정성과 애정을 쏟았다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중학교때 부터 남부럽지 않은 고지의 학교만 다녀온 나도 다소 버거운 언덕코스위에 문학관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측으로는 선생님에 관한 다큐영상과 전시물을 볼 수 있는 건물이, 좌측으로는 기념품점과 화장실이 자리해있다.


좌측건물 잔디밭 한 가운데서 선생님께서 비를 맞으며 집필활동에 전념하고 계셨다...(응?)



전시장 안 한쪽 벽면을 메우고 있던 메밀 관련 음식들.. 아 먹고싶었는데...


아마도 <메밀꽃 필 무렵>의 한 장면을 모형화 한듯. 난 이런 미니어처 조형물이 너무 좋다.




선생님께서 실제 집필활동을 하셨던 방의 가구와 여러것들을 그대로 가져와 재현한 코너도 있었다.
바로 그 옆에는 당시 선생님께서 찍으셨던 사진도 전시해 비교해 볼 수 있었다.





역시 이효석 선생님의 봉평마을 답게
마을 곳곳에 당나귀(혹은 노새)와 관련한 자취들이 더러 있었다.

이날의 마지막 외부 행사인 조별연극을 위해 넓은 공터로 이동했는데
그 주변에 저렇게 귀여운 목조 인형들이 장식되어있었다.

선생님의 작품 속 묘사 만큼이나 익살스럽고 생기발랄한 그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난생 처음 와 본 곳임에도
마치 명절때마다 찾아와 온 동네를 헤집고 뛰어다니던 그 마을 풍경같은 느낌의 봉평.

지나다니는 어르신들 모두가 우리 할아버지, 작은할아버지, 당숙 어르신 같은
고즈넉하고 평온하지만 자꾸 발걸음이 멈춰서 미련이 남게 하던 그 마을 봉평.

이 마을의 느낌이 바로 이효석 선생님으로 하여금 그 주옥같은 작품들을 써내려 갈 수 있게 한 것이구나.. 싶었던
그 날의 기억. 아마 나는 그 느낌을 꽤 오랫동안 지우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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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휘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