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조대에 이어 또 다시 버스를 타고 향하는 문학캠프의 둘째날 마지막 외부행사는
바로 영동지방을 대표하는 사찰 낙산사였다.
전체 2박 3일의 여러가지 코스 중 조별연극 만큼이나 나를 긴장케 했던 이 일정은,
유년시절의 내게 너무도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들이 새겨져있는 공간이며
안타까운 화재로 인한 참사 이후 한 번도 발걸음을 하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긴장되는 마음을 안고 첫 발을 디딘 낙산사의 입구.
호숫가 한가운데 자라가 목을 빼꼼히 내밀고 있어서,
이 곳을 지나는 참가자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비록 우리가 지나는 길가 반대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호숫가로는 사진과 같은 전통 방식의 목재 수로를 통해 물이 조금씩 유입되고 있었다.
사찰을 방문하면 가장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풍경이 바로 이 기왓장 소원수리 행렬인 듯 하다.
사찰 본당으로 향하는 길가에는 내가 좋아하는 대나무도 잔뜩 심어져 있어 긴장된 마음이 제법 누그러졌다.
언제, 어디서 봐도 마음이 설레는 아름답고 청초한 들꽃들.
사찰 내부에서 제일 처음 마주한 곳은
여러 기념품들을 판매하고 점심때 식사(국수)까지 제공되는 한 터였는데,
건물 옆에 설치된 자판기에 요렇게 눈에띄게 커피무료! 라는 버튼이 붙어있었다.
(물론 낼롬 한 잔 뽑아먹는 센스는 필수!)
사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고즈넉함과 은은한 향나무의 내음 덕분에
어느새 그 방문에 앞서 가졌던 긴장과 염려는 많이 진정되었다.
사찰 내부를 함께 둘러보던 같은 차량의 언니와는, “여길 점심 때 와서 공짜국수를 먹었어야 했는데~”
라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비록 나는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이런 왠지 모를 편안함이
이따금씩 사찰 기행을 떠나고픈 충동을 머금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처음으로 만난 본당 건물 중 하나. 누각같은 느낌인데, 꽤 규모가 크고 높아서 아래쪽 풍경이 한눈에 내다보였다.
같은 차량에 탑승해서 제법 친해졌던 4조 언니. 알고보니 자취하는(언니는 기숙사) 곳도 가까웠다.
누각의 옆면, 나는 우리 전통 건물의 처마끝이 너무나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하염없는 언덕길을 올라 절벽 끝에 마련된 정자를 향해 걸었다.
때는 이미 해가 저물 시간에 가까운 늦은 오후였는데, 이 날의 더위는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리 급한 경사는 아님에도
대낮부터 더위에 지쳐있던 참가자들은 헥헥거리며 힘든 발걸음을(어쩌면 나만?)
옮겼지만, 영동의 대표 답사지 답게.. 너무나 아름다운 낙산사의 풍경들 덕분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가는 길가에서 발견한 어린 소나무 한 그루, 문득 이범선 선생님의 <학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본당 어딘가에서 발견한 작은 석탑하나. 공장에서 막 깎아온듯 너무 반듯한 모습에 왠지 정이 가지 않았다...
사찰 어디에서나 한 번쯤 볼 수 있는 연꽃모양 석탑. 그리고 그 아래 핀 조화같은 너무나 예쁜 꽃 한송이.
해수관음상을 향해 올라가던 중
길가에서 이렇게 말라버린 나무 그루터기를 하나 발견했다.
이 아이는 화재때 죽어버린 나무의 잔흔일까..
라는 생각에 또 맘이 찌르르 해지기도 했다.
그저 제 운을 다해서 잎을 피우고 피울만큼 살다가 간 것 이기를..
하고 바라는 것 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사찰 답사라면 남부럽지 않게 다녀봤고,
동양 최대의 목조건물인 일본 나라현의 도다이지(동대사)까지 갔다와 본 나이지만,
낙산사의 해수관음상은 정말 볼 때마다 감탄스럽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속 흰티를 입은 여자분은 캠프 참가자 중 한분이셨는데,
불교를 믿으시는지 이 관음상 앞에서 절을 몇 번 하고는 내려오셨다.
항상 볼 때마다 깨닫는 점 이지만,
어느 한 종교에 대한 인간의 엄숙한 신앙은 그 태도만으로도 참 멋스럽고 숭고하게 느껴진다.
날이 너무나 더운만큼 하늘은 너무도 맑고 투명했다.
이 때부터, 카메라 배터리가 모두 소진되어 한 컷 한 컷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껐다 켰다를 반복하며 참 귀찮은 수고를 해야만 했다.
그래도 그렇게 애쓰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사진 실력은 없을지라도...
이제 멀리서부터 복원터가 보이기 시작했다.
심장 언저리가 점점 차갑게 식어가는 느낌이었다.
과거의 흔적은 모두 사라진 채
어떻게 보면 퓨전사극의 촬영장 같기도 한 아이러니한 느낌의 복원터를 보며..
딱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내 어린시절의 추억과 낭만을 박탈당하는 기분,
그 순간의 모멸감과 허망함.
어느 책에선가 본 그 구절이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내가 방문한 순간에 그 날의 상흔이 채 수습되지도 못했다면..
그것이 더 상처였을지 모르겠지만..
원통보전 앞에 세워진 조선시대(세조 임금때로 추정) 석탑양식인 보물 재 499호 낙산사 칠층석탑이다.
아마도 그 화재의 흔적 중 하나일 죽은 나무 한 그루. 나는 저 곳에 돌을 올려두고 소원을 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절터를 한바퀴 돌고 내려오니
낙산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인 건어물 판매상이 죽 늘어선 상점가가 나왔다.
바로 제일 처음 보이는 곳에서 본가에 계신 부모님 드릴 지포를 한 팩 사고,
상점가 끝으로 돌아섰는데, 우리 차량 남자 스텝분께서 그 구석에 강아지가 있다고 알려주셨다.
냉큼 달려와보니 바글바글한 아기강아지를 여러마리 낳은 어미개가 있었는데,
배터리가 부족해서 어미개만 찍고 나니 이젠 켜지지도 않게 되었다.(ㅜㅜ...)
너무 많은 새끼들 젖을 거둬먹이느라 비쩍 말라버린 어미개를 안타깝게 쓰다듬어주고..
차량 탑승시간이 되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비록 즐거움보다는 안타까움과 서글픔이 더 진했던 이번 낙산사 방문이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다시는 그 곳에 발을 디딜 수 없었을 것이란 생각에 한 편으론 위안이 되기도 했다.
어느새 그 곳에 다녀온지도 열흘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지금의 나는 어디로든 훌쩍 떠나고 싶어 몸이 매우 달아있다.
우선 그 전에 얼마 남지 않은 이 2박 3일의 일정을 마무리 정리해서 기록해 둬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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